[ 대구지하철참사사건 재판참관기 ]

변호사 / 전상훈    

 대구 지역에서 일어난 가장 비참하고 참혹한 사고라 할 수 있는 대구지하철참사는 변호사로서 관련자들의 변론을 맡기가 거북스러운 사건이었다. 몇 번의 고사(固辭) 끝에 부득이 지하철공사 직원의 변호인으로 재판에 관여하게 되었는데, 대형참사인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 사건 재판의 과정과 참가하면서 느꼈던 감회를 담담하게 기록하면서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를 소망해본다.

1. 사건의 개요 등

이 사건은 뇌질환 등 신병을 비관한 50대의 남자가 중앙로역에 정차한 대구지하철 소속 1079호 전동차 안에서 불을 질러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1080호 전동차가 역에 진입하면서 화재가 확산되어 190여 명이 사망하고 140여 명이 상해를 입은 사상 초유의 대형 참사사건으로 방화범 및 전동차 기관사 등 지하철공사 관련 직원들이 현존전차방화치사상죄 및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죄로 기소된 것이다.

2. 재판부 및 재판 전의 회동

이 사건은 대구지방법원 형사 합의 제11부(재판장 : 이내주부장판사)에 배당이 되었으며, 재판부는 2003년 4월 1일 변호인 및 수사검사와 사전 회동을 갖고 우선 신속한 집중심리가 필요하다는 사정을 전달하면서 증거의 제출 등을 신속히 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변호인들로서는 변론준비를 제대로 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으므로 기일연기신청서를 제출하여 첫 기일은 2003년 5월 19일 14시로 지정되었다.

3. 첫 공판(公判)

첫 공판은 예정대로 대구지방법원 제11호 법정에서 개정되었는데, 방청권 등의 배부를 하는 과정에서 일부 제외된 유족들이 법정 밖에서 경찰과 충돌하여 유혈사태까지 빚어졌으며, 그로 인하 여 개정되자마자 유족들이 법정에서 거세게 항의를 하는 사태가 벌어져 법정의 질서를 잡는데 재판부가 애를 먹었다. 이전부터 유족들이 법정주변에서 시위를 벌여왔던 사정에 비추어 본다면 재판부와 경찰간에 사전협조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수차례의 설득 끝에 유족들이 진정되자 검사의 주신문(主訊問)을 시작으로 첫 공판이 시작되었는데 신문과정에서 방화를 한 피고인 김대한은 신문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다가 국선변호인의 신문에 대하여는 또박또박 답변을 하는 바람에 유족들의 공분을 자아내게 만들었으며, 수사를 직접 담당한 검사가 공판에 관여하였음에도 사건의 전개과정이나 지하철공사 직원인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을 일목요연하게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고, 검사 스스로도 엄정함과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유족들의 감정에 편승하여 자주 격앙되는 모습을 보여주어 신문 내내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다. 적어도 이와 같은 사건에서 지하철공사 직원들의 개별적인 업무상 과실은 명확하게 특정을 하였어야 할 것임에도 전동차의 운행이나 통제와 관련된 부서에 있는 직원들은 무조건 과실이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린 감이 많이 들었으며, 수사미진의 점도 상당히 엿보였다.
지하철공사 직원인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은 다른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이 많이 포함된 반대신문(反對訊問)을 하였는데 간간히 유족들이 야유를 보내거나 항의를 하여 결국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재판이 진행되었고 앞으로의 재판과정에서 변호인들간의 공방이 자주 벌어질 것을 예상하게 했다. 이 사건은 대형참사이기는 하지만 법리상 과연 업무상 과실을 인정할 수 있는 지를 엄격하게 가려져야 할 것인데 피고인들이 유족의 항의가 빗발치는 분위기 속에서 임의로운 답변을 하기가 힘들어 아쉬움을 남긴 첫 재판이었다.

4. 두번째 공판

5월 26일 14시 개정된 두번째 공판에서 변호인들이 상피고인들에 대한 신문을 하였는데 주쟁점은 누가 가장 큰 과실이 있느냐, 즉 선행 과실은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였다. 검찰의 공소사실만으로 본다면 당초 화재가 발생한 1079호 전동차의 기관사가 화재발생사실을 운전사령실 등에 보고를 하지 아니하였고, 화재 현장에 있었던 역무원도 운전사령실에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아니하였으며, 경보가 울리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설비사령실 직원들의 과실이 경합되었고, 운전사령들은 모니터 감시업무를 게을리하였거나 제대로된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업무상 과실이 있으며, 나중에 중앙로역으로 진입한 1080호 전동차 기관사는 승객들이 탈출할 수 없도록 전동차의 출입문을 차단하고 탈출하였다는 정도였지만 변호인이나 피고인들은 한결같이 화재로 인하여 통신수단이 두절되면서 상황파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가운데 순식간에 화재가 확산되어 대형참사로 이어졌다는 요지의 변소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상피고인들에 대한 신문은 검사의 주신문보다 훨씬 강도 높고 집요하게 진행되었는데 책임을 전가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답변을 강요하는 듯한 변호인들의 신문이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5. 세번째 공판

6월 2일 14시에 개정된 재판에서는 주로 검찰 측의 증인신문이 있었는데 화재 당시 현장에 있었던 승객들이 대부분으로 그들의 증언을 통하여 화재 당시의 비참하고 절박한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으며, 변호인의 입장에 있었지만 5분 여의 짧은 시간에 제대로 된 조치 한번 하지 못하고 이렇게 대형참사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의 재해방지 시스템에 대하여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검사는 주로 승객들의 진술을 통하여 전동차 기관사들의 미숙한 조치나 탈출을 봉쇄한 행위 등에 대하여 집중 신문을 하였고, 변호인들은 전동차 기관사나 역무원들이 화재 진압과 승객들의 탈출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역부족이었던 사정 등을 입증하는데 주력하였다. 한편 이 날 재판에서는 검사나 변호인들 모두 통신시간, 소요시간, 체류시간 등에 대하여 집요한 신문을 계속하였는데 이는 전동차 기관사나 역무원들이 현장에서 승객들을 위하여 어느 정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운전사령실에 통보가 된 시간 등을 확정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신문이었지만 그 당시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던 승객들을 상대로 이를 입증하기에는 무리인 것 같았다. 그리고 역무원의 과실을 논함에 있어 중앙로역의 경우 비상시 역무원이 전동차를 비상정지 시킬 수 있는 장치가 있는 운전취급역임에도 이를 작동시키지 아니한 부분에 대하여 전혀 수사가 되어있지 아니하여 상변호인이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였다.

6. 네번째 공판

6월 9일 14시부터 주로 피고인 측에서 신청한 증인들에 대한 신문이 이루어졌는데 주쟁점은 통신이 이루어진 시간 등에 대한 것이었고, 운전사령실에도 이미 연락이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 및 설비사령실에서 화재 경보를 묵살한 경위 등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는 주로 역무원과 전동차 기관사 측에서 제기한 문제였지만 수사단계에서부터 관련부서의 계기(計器)상에 나타난 시간이 일치되지 아니하여 표준시간으로 시간을 재차 확정하는 것이 급선무였지만 수사기관에서는 이를 간과하고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아니하여 재판부, 검사, 변호인간에 지루한 공방만 계속되었다. 한편 중앙로 역장에 대한 증인신문 과정에서 중앙로역에서 1080호 전동차를 운전사령실의 통제없이 비상정지 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비교적 평온한 상태로 방청하던 유족들의 항의와 욕설이 빗발치는 바람에 재판이 일시중단 되었다. 검찰이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점이 또 한번 드러난 것이다.

7. 다섯번째 공판

6월 16일 14시에 개정되어 대구지하철공사 통신사령실 직원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직원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되었는데 결국 증거상 나타난 통신시간과 표준시간과의 오차 문제 때문에 반복신문이 계속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검찰이나 변호인 모두 정확한 근거가 없어 실질적으로 오차를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는 점과 통신시설의 문제점과 특성이 제대로 수사되지 아니하여 운전사령실에서 실제로 기관사와 화재 발생 즉후 통신이 이루어진 여부가 온전하게 밝혀지지 아니하였고, 운전사령들 역시 상황파악을 위하여 노력을 한 사정들이 통신시설상에 명백하게 드러나있지 아니하여 이를 입증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1080호 전동차 기관사의 경우 승객들의 대피하기 이전에 이미 지하철역 밖으로 나와 운전사령실에 연락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었지만 이는 제대로 구증되지 못하였다.
어찌되었거나 주요 증인에 대한 신문을 마치고 방화범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가 나오는 다음 기일에는 결심을 하기로 하였다.

8. 여섯번째 공판

방화범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가 도착함에 따라 7월 23일 10시에 결심공판이 열렸는데, 방화범의 경우 지병으로 인한 심신상실(心神喪失)이나 심신미약(心神微弱)의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나왔으며, 재판부의 간략한 보충신문이 있은 다음 검사의 의견 진술이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하여 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막대한 재산상의 손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하여 대구 경제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하였고 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사건인 점 등을 고려할 때 방화범의 경우 사회에서 영구격리함이 마땅하다는 취지에서 사형을, 기타 지하철공사 직원인 피고인들에 대하여는 일괄하여 법정최고형인 금고 5년을 구형(求刑)하였다.
그러나 유족들은 지하철 공사 직원들에 대한 구형에 불만을 품고 욕설과 항의를 격렬하게 하여 변호인들은 변론요지서로 변론을 대체하기로 하였으나, 법정이 아수라장이 되는 바람에 피고인들의 최후 진술 기회를 부여하지 아니하고 종결되었고 그 후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7월 30일 11시에 변론이 재개되어 피고인들의 최후 진술이 있었으나 방화를 한 피고인은 “죽여 달라”는 말만 반복하였고 나머지 피고인들도 자신의 입장을 변소할 분위기가 못되다보니 유족들에 대한 사과의 말만 하고 종료되었다.

9. 선고 공판

드디어 2003년 8월 6일 10시 피고인들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으며, 재판부는 여느 다른 재판과는 달리 피고인들의 주장에 대한 판단과 양형(量刑)의 이유 등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하였는데 방화범의 경우 감정결과는 심신장애(心神障碍)가 있지 아니한 것으로 나왔지만 이 사건 범행에 이르기 전의 행태 등을 감안하여 본다면 온전한 정신상태에서 이 사건 범행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려운 사정과 피고인이 불을 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인명의 살상이라는 결과는 그 후 1080호 전동차가 진입하면서 화재가 확산된 사정 등을 이유로 무기징역형을 선고하였으며, 전동차의 출입문을 닫아버려 많은 승객이 대피하지 못하도록 한 1080호 전동차 기관사에 대하여는 과실이 크다는 이유로 금고 5년을, 초동조치를 미흡하게 한 1079호 전동차 기관사와 처음 연락을 받고 1080호 전동차를 바로 정차시키지 아니한 운전사령에 대하여는 각 금고 4년을, 나머지 운전사령들에 대하여는 각 금고 3년을 선고하는 한편 설비사령이나 역무원 등 1080호 전동차의 운행을 직접 통제하는 부서에 있지 아니한 피고인들에 대하여는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는데, 이는 재판부가 이 사고가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것은 당초의 화재보다는 1080호 전동차의 진입으로 인하여 화재가 확산되고 대부분의 사상자가 1080호 전동차 승객이라는 점을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족들은 판결 결과에 흥분하여 법정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으며 쉽게 법정을 떠나지 못하고 항의를 빗발치게 하였다.

10. 재판을 마치고...

변호인의 입장을 떠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재해방지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어 다시는 이와 같은 대형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소망하며, 사회적 이목을 끄는 대형참사일수록 여론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사고의 원인부터 결과까지 많은 시간을 갖고 철저하게 수사하고, 재판하여 근본원인을 밝혀내고, 그 책임의 소재를 보다 면밀히 밝혀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로 인하여 사법제도가 사회전반의 무감각한 안전의식에 대하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제도를 보완하는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